데카르트 이래「사유」는 인간존재의 근거이자 존립의 토대였다. 또 그것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였다.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20세기가 낳은 탁월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사유」하지 않고.「판단」하지 않는 것이 악의 근원이라고 규정했다. 아렌트의-예루살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아이히만을 보고 내린-「난간 없는 사유」의 결정체였다.
아이히만은 재판과정에서『자신은 칸트의「실천이성비판」을 읽었으며, 칸트의 도덕적 명제에 따라 살았다.』고 진술했다. 아렌트는 이런 아이히만을 보고「인간이 특정한 상황에 직면하여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의 결과」라고 말했다.
아렌트는「선은 악의 결핍」이라는 플라톤-아우구스티누스의 일원론적 세계관이나「선과 악은 실재」라는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 아퀴나스의 이원론적 세계관이나「선과 악은 이미 생물학적으로 입력되었다는 유물론적 결정론」에서 벗어나「악의 평범성」에 착안한 것이다.
아렌트는 사람이 사유하지 않으면「살아있는 죽음」이고.「사막」과 같은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는「우주의 모든 것은 무질서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질서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이 필요한데 사람에게는 사유가 에너지」라고 보는 것이다.
사람은 사유하지 않으면 성찰이 있을 수 없고. 도덕적 충동이나 영원성의 충동은 물론이고 생명의 연대적 충동도 일어날 수 없다. 또 현상을 넘어 본질을 볼 수도 없거니와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추한지 아는 미학적 눈을 뜰 수 없다.
사람이 사유능력을 잃게 되면 만이(蠻夷)의 땅으로 유배를 가서 만이의 말을 따라하고 만이의 얼굴을 닮는「조언이면(鳥言夷面)」의 신세로 전락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 통약(通約)불가능이 생겨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된다.
사람에게 사유가 없으면 고뇌가 없으니 연민은 박할 것이고, 해체와 복원이라는 생각의 변증법은 성립이 어려울 것이고. 당연히 사유의 확장이나 지평의 확대와 같은 공간을 얻지 못하니 다른 사람의「인생」과「세계」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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