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람 사는 사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 앞으르도 대동소이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고려는 그래도 행복한 나라였다. 3은(三隱)이 있었고. 두문동 72현(賢)이 있었고. 정선 8현(賢)이 있었다. 역사상에 많은 나라들이 명멸했지만 고려처럼 충신열사를 많이 가진 나라도 드물었다. 딱 하나 그런 나라가 있다면 중국의 명나라가 고려에 비견되었다.

명나라의 유신(遺臣)들은 고려의 유신들과는 달리 적극적인 무장투쟁으로 만주족 청나라에 대항했으나 역부족을 깨닫자 은둔과 저술의 길로 들어선다. 왕부지가 그랬고 고염무가 그랬으며 황종희가 그랬다. 그리고 오위업은 그만 강제출사를 부끄럽게 여겨 지식인의 반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고려3은 중의 한 사람으로 호가 야은(冶隱)인 길재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는 시조「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로 너무나 유명하다. 지조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 야은이지만 세종이 아들 사순(師舜)을 부르자 나는 나의 임금에게 충성하고 너는 너의 임금에게 충성하라며 아들의 출사를 허락한다.

명나라의 유신 황종희도 강건세(康乾世)라 불리는 강희제의 부름을 받으나 거절한다. 그러자 강희제는 그 지역의 순무를 황종희에게 보내 그의 서책을 베끼게 하고 궁으로 가져와 읽는다. 이에 감동한 황종희는 아들 백가(百家)를 궁으로 보내 명나라의 역사 편찬을 돕도록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살펴야 한다. 시람 사는 사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 앞으르도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길재를 알아주고 황종희를 알아준 사람이 한국 역사상 최고의 군주라 일컫는 세종이고 중국 역사상 당태종과 쌍벽을 이루는 강희제라는 사실이다.

영웅이 영웅을 알아본 것이고, 오랜만에 지음(知音)이나 지우(知遇)를 만난 격이었다. 둘째로 승복하고 동의를 받는데 정치적 술수나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직 문화의 힘으로 철옹성 같고 빙설 같은 길재와 황종희의 마음을 허물었다는 것이다.

두 정권 다 잔인하게 나라를 세우다보니 지식인들의 반감은 날 선 검(劍)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이 하는 것이 고려의 왕들보다 월등하고, 강희제 하는 것이 명나라 말기의 우둔한 황제들보다도 유학을 더 중시하고 선비를 극진히 대우하니 민족이나 불사이군(不事二君) 등의 마음이 흔들리고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는 말한다. 정치적인 것이나 군사적인 것은 문화적인 것의 표피이고 외피라고. 그렇다면 세종과 강희제는「문화의 힘」을 안 지도자였고. 문화의 동질성으로 나라를 통합한 지도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문화라는 무기로 사람의 심장을 벤 것이다. 오늘날 지도자는 많지만 세종과 강희제 같은 지도자가 없는 것이 난세의 원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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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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