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준 푸른한국닷컴 칼럼니스트]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의 포린어페어스에 게재된 남북관계에 철학에 관한 기고문을 놓고 "내가 아는 대학교수가 써줬다는데"라며 사실상 대필(代筆)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은 2일 박 전 대표의 정몽준 전 대표가 ‘대필’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글을 써줬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며 “사실이 아니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정 전 대표는 박 전 대표의 글을 읽어보지도 안고 경솔하게 거짓말을 앞세워 헐뜯고 있다”면서 “정 전 대표는 그 글을 써줬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필(代筆)은 주로 자서전이나 회고록 등을 쓸 때 구술이나 초고에 의해 전문작가가 대필하거나 혹은 연설문을 참모들이 대필하고 연설자가 감수하거나 하는 것이 다.

표절(剽竊)은 다른 사람이 쓴 문학작품이나 학술논문, 또는 기타 각종 글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직접 베끼거나, 관념을 모방하면서, 자신의 독창적인 산물인 것처럼 공표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 본인의 지식과 식견 부족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이것은 본인의 부족함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서전을 발간했어도 국민들은 그가 직접 작성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대다수 사람들은 ‘대필’했다고 생각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직접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관훈클럽 토론회에 나갔을 때 일이다.

당시 패널로 참여한 한 신문사 논설위원이 "비핵지대화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거기에는 전술핵도 포함되는지요?"라고 물었다. ‘전술적인 목적으로 만든 핵무기도 없애겠냐’는 물음이었다.

그러자 김영삼 전 대통령, 엉뚱하게도 "원자로 말씀입니까?"라고 물었다. 전술핵은 무기, 원자로는 에너지 생산 장치인데 이걸 서로 헷갈린 것이다.

그래서 신문사 논설위원이 다시 "전술핵, 핵무기 말입니다"라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더니 또 횡설수설했다.

그러자 다시 신문사 논설위원, 캐물었다. 듣다 못한 김영삼 전 대통령 발끈했다. "아, 모른다는데 왜 자꾸 그러느냐"라고 말이다. 사실 이 정도면 소탈한 편이다.

딴 정치인 같으면 ‘그 얘기는 따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며 빠져나갔을 텐데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정치인이들이 그런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기는 힘들다. 전문가의 도움이 있다할지라도 핵에 대한 기본철학을 갖고 있어야 대답을 할 수 있는 고난도 문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술핵’에 대해 제대로 답변을 못했어도 국민들은 그를 무식하다고 욕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솔직함과 용기에 더 점수를 주었다.

그것이 지도자가 갖는 ‘원칙과 신뢰’다. 아닌 것을 한번 약속했다고 우기는 것이 ‘원칙과 신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북문제 전문가라고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도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통일정책을 수립하는 데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고 통일관을 완성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을 기고했느냐 안 했느냐가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박 전 대표처럼 정치활동에 바쁜 사람이 혼자만의 힘으로 외부에 기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국민들의 관심은 박 전 대표의 기고냐 아니면 표절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정도의 식견을 갖추고 있느냐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런 정도의 식견을 완전히 자신의 철학으로 완성시킬만한 정치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할지라도 혼자서 그런 구상을 정립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고문이나 연설문을 작성할 때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자신의 구상을 대필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다.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그런 절차를 밟아 정치행위를 한다.

박 전 대표 측에서 밝혀야 할 것은 대필이냐 표절이냐에 대한 항변이 아니라 박 전 대표가 어느 정도의 식견을 갖고 완성했느냐를 국민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 철학 없이 글 전체를 통째로 어느 교수에게 써 달라고 부탁해서 그냥 올렸다면 ‘무소견, 무신념‘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 모른다는데 왜 자꾸 그러느냐" 짜증내는 것보다 더 위선적인 행동이라고 본다.

박근혜 전 대표 측 핵심인사라는 사람이 10월 26일 서울시장 선거 보궐선거에 "박 전 대표가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는 보도가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지원에 나서는 데는 한 가지 단서가 붙어 있단다.'보궐선거가 지난 24일 서울시 주민투표처럼 무상급식을 둘러싼 대결구도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전제조건을 제시하기 전 국민이 제시하는 단서가 있다.

박 전 대표가 왜 무상복지가 좋은지 그가 주장하는 복지정책은 무엇인지 TV토론에 나가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도 혼자 하는 ‘단독컨서트’가 아니라 ‘나는 가수다’처럼 경쟁하는 무대에서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박 전 대표가 검증도 없이 혼자 주장한 것이 ‘원칙과 신뢰’가 아니라, 국민들이 박 전 대표에 대한 ‘진정성과 식견’에 검증하는 것도 ‘원칙과 신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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