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야마(關山) 터널을 빠져나와 센다이(仙臺)에 들어서자 검은 융단을 펴 놓은 것 같은 암흑이 펼쳐졌다. 야마가타(山形)와 센다이를 가르는 이 터널을 빠져나와 20㎞를 달릴 때까지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비상전원을 이용한 가로등만 누런빛을 내는 황량한 풍경이었다.

원래 이 지역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온천여관과 호텔들은 별빛 속에서 칙칙한 형태만 드러내고 있었고 주변의 식당과 상점은 철시(撤市)한 듯 일제히 문을 닫고 있었다. 10분을 넘게 달려서야 겨우 어디론가 가는 모자(母子)가 보였다.

도심은 전기가 부분적으로 공급되고 있었지만 전혀 도호쿠(東北) 최대 번화가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치 공상소설에 나오는 사람이 살지 않는 기묘한 우주 도시 같은 모습이었다. 주민들은 이렇게 망가져 자력기능을 잃은 센다이를 탈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일본이 울었다… 일본 미야기(宮城)현 나토리(名取)의 피난민 대피소에서 12일 손녀와 상봉한 할머니가 손녀를 껴안고 있다. 일본 NHK 방송은 13일 도호쿠(東겗)지역 6개 현 2130곳의 대피소에 적어도 39만2225명의‘지진 난민’이 피신해 있다고 밝혔다. /AP 뉴시스 본지 기자 일행이 센다이를 향해 달리는 동안 반대편엔 12㎞나 되는 자동차 행렬이 긴 뱀처럼 어둠 속에 붉게 빛났다. 하지만 도로 중간에 지진피해 복구를 위한 공사가 벌어지고 있어 시간이 갈수록 행렬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3·11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센다이에는 정전(停電)과 단수(斷水)가 계속되고 있다. 센다이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국도, 철도, 항공로가 모두 막히면서 시작됐다. 대형수퍼 '후지'는 아침 7시에 문을 열었지만 전날 밤부터 기다린 행렬이 밀려들었다.

이 가게는 밤늦게까지 물건을 팔기로 했지만 전기가 끊기자 점포 앞에서 물건을 파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일반 물품뿐 아니라 유류난이 가중되면서 시내 주유소들은 휘발유는 자동차 1대당 2000엔어치, 등유는 1000엔어치씩만 제한적으로 팔았다.

대형재난이 일어난 지 사흘째를 맞았지만 시내 곳곳은 여전히 지진과 쓰나미가 할퀴고 간 상흔이 깊었다. 본지가 둘러본 나나키타(七北田) 하천 주변은 폐허였다. 바다로 이어지는 제방은 뭉개놓은 두부처럼 찌부러져 있었고 떠내려가다 멈춘 자동차들은 진흙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센다이시에서 국도 6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세 시간을 달리자 이번 지진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게센누마(氣仙沼)가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쓰나미가 커다란 웅덩이처럼 도시를 담고 있었고 그 위에는 누군가 부숴놓은 듯한 집들이 떠 있었다. 또 그 주택의 잔해들 사이에선 화재가 일어나 짙은 회색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이곳엔 주민 약 7만5000명이 살고 있었으나 1만5000명만 대피한 것으로 확인됐을 뿐 나머지는 소식을 알 수 없다.

한 주민에 따르면 "쓰나미가 빌딩 위에 휘발유 저장 탱크를 덮쳐 대형 화재가 일어났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나 아직 손을 쓸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미야기현 관계자들은 현장 접근을 막고 있지만 간간이 구조는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구조라는 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박스 위에 노약자를 태우고 안전한 곳까지 옮기는 정도일 뿐이었다.

게센누마에서 더 북쪽에 위치한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도 도시 전체가 한폭의 수묵화처럼 흰색과 검은색뿐이었다. 바다에서 성난 쓰나미가 급류를 이뤄 이 지역을 파고든 뒤 바다로 되돌아가면서 도시 전체를 끌고 가버린 것이다.

진흙이 뒤덮인 도시에선 곳곳에 화재가 일어나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일본 언론이 '도시 전체가 사라졌다'고 표현한 리쿠젠타카타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20대 청년은 눈물을 흘리며 "아직도 아버지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며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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