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담. |
[고성혁 군사전문기자] 3월 20일 일본 정부는 오는 5.19(금)부터 21(일)까지 히로시마에서 개최되는 ‘2023 G7 정상회담’에 한국을 초청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일본의 초청에 환영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우리의 G7 정상회의 참여는 유례없는 복합위기 해결을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하는 한편,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G7 국가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심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포함, 호주, 베트남, 인도(G20의장국), 브라질(내년도 G20의장국), 인도네시아(ASEAN의장국), 코모로(AU의장국), 쿡제도(PIF의장국)을 초청했는데, 주요 지역기구·다자국제회의 의장국 자격이 아닌 국가로서 초청받은 나라는 대한민국, 호주, 베트남 3개국이다.
이번에 일본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이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될 듯하다. 한국은 ‘G7 국가’ 바로 다음의 경제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 공급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G7 국가들도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은 한국이 ‘G7 +1’을 넘어서 명실상부한 G8 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터닝포인트라고 평가한다. 또 다른 초청국 브라질은 브릭스 국가이고 베트남은 중국 견제 및 동남아에서 가장 잘나가는 나라다.
G7의 처음 출발은 미,영,프,서독 4개국
1970년대 국제사회는 미증유의 세계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1973년 1차 석유파동, 급격한 인플레이션, 저성장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 경기후퇴, 보호무역주의 대두 등 온갑 악제가 스나미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시작은 미국의 금본위체제 해체에서 출발했다. 일명 브레턴우즈 시스템의 종말이 그것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을 치르면서 어마어마한 전비를 사용했고 그것은 인플레로 이어졌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은 금 태환 정지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1971년 미국의 금 태환 중지 선언 이후 스미스소니언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미국 George Schultz 미국 재무장관이 영국, 프랑스, 독일 재무장관에게 백악관 도서관에서 만나자고 제의하면서 1973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재무장관은 백악관 도서관에서 Library Group 결성한 것이 시초다.
그러니까 G7의 처음 출발은 G4였다. 미,영,프,서독이다. 이들 국가 경제력이 합은 전 세계 경제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 이것은 경제문제로 시작된 것으로 처음엔 정상회담이 아니었다. 경제장관 회담에서 출발했다.
또 이것은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포션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면서 미국 혼자서는 불가능하게 되면서 자유진영 우방국, 영국, 프랑스, 독일과 함께 경제문제를 조율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G4 출발이라 할 수 있는 Library group은 당시 세계 경제의 4%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로 구성했다. 여기에 이탈리아도 세계 경제에서 4% 이상을 차지 했지만 당시 이탈리아 정권이 좌파성향이라서 배제했다.
그러다가 1975년 일본과 이탈리아가 추가되면서 G6가 됐다. 이탈리아의 경우 프랑스에서 열리는 회담에 끼워달라고 억지로 메달렸다는 후문이다. 그 경제장관이 수상이 되면서 회원국이 됐다,
G6 회원국 참여 조건은 ▶ 자유민주주의 국가 ▶ 1975년 기준 일 인당 GDP 최소 5,000달러 이상. (* 당시 한국 1인당 GDP는 660달러.) ▶ 세계 총GDP의에서 경제력이 4% 이상 국가였다.
캐나다는 1975년 첫 G6 정상회의부터 참여를 희망하였지만,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3%로 G 6국가 기준에 미달되어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데 1975년 프랑스의 요청으로 이탈리아가 참여하게 되자 미국이 북미국가도 참여시켜야 한다면서 1976년 ‘산후안 회의’ 때 캐나다를 가입시켰다. 그렇게 G7 국가가 완성됐다.
G7 정상회담이 결성되는 이유에는 유엔상임이사국의 역할이 무의미해진 이유도 있다. 원래 1945년 전후 세계질서는 유엔상임이사국이 주도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미소 냉전이 시작되고 중국이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면서 미국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됐다. 그래서 자유진영 국가만의 경제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G7이다. 따라서 전범국가인 독일과 일본도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G7 국가만으로는 세계 경제 감당 어려워
1980년대까지만 해도 G7 국가 경제력의 총합은 세계 경제의 절반을 상회했다. 그러다가 중국이 급부상 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유진영 국가만의 경제정책으로는 세계겅제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을 일종의 제도권 안에 끌어들여서 통제하기 위해 WTO에 중국의 가입을 허락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당황했다.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한 사람이 트럼프다. 중국포위전략을 구사하는데 그것이 G7 국가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게 된 것이다. 또한 미국의 경제력,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줄어들었다.
2차대전 직후 미국의 경제력은 혼자만으로 세계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다가 1978년 무렵 미국의 경제력 비중은 28%, 2018년에는 25%로 줄었다. 반대로 중국은 2018년 16%까지 올랐다.
따라서 G7 회의에 추가적인 국가가 필요했다. 트럼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G8로 만들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는 퇴출되고 이제 한국이 그 빈자리를 채우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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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혁 sdkoh40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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